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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산업

나노기술을 활용한 난용성 약물의 전달 기술

 

1. 서론: 약은 개발되었지만, 체내에 흡수되지 않는다?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약물의 유효성만큼이나 중요한 과제가 바로 약물의 ‘생체이용률(Bioavailability)’ 확보입니다. 생체이용률은 환자의 몸 속에 투여된 약물이 실제로 얼마나 흡수되어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제제 기술만으로는 물에 잘 녹지 않는 ‘난용성 약물(Poorly Soluble Drugs)’을 효과적으로 흡수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현대 제약 산업은 신약 후보물질 중 약 40~60% 이상이 난용성 성분이라는 보고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체내 흡수가 어렵다는 이유로 개발이 중단되거나, 주사제 등 비경구적 제형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효한 약물인데도 우리 몸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솔루션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노기술 기반 약물 전달 시스템(Nano Drug Delivery Systems, NDDS)입니다. 나노기술은 약물의 입자 크기를 수십~수백 나노미터 수준으로 축소하고, 다양한 제형을 통해 용해도 개선, 투과력 증가, 표적 전달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나노기술을 활용한 난용성 약물의 전달 기술
나노기술을 활용한 난용성 약물의 전달 기술


2. 난용성 약물의 문제점

2-1. 약물 용해도란?

용해도(solubility)는 약물이 수용액 상태에서 얼마나 잘 녹는지를 나타내며, 이는 약물의 흡수 속도와 정비례합니다. 난용성 약물은 위장관 내 수분과 결합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흡수 속도가 매우 느리거나, 아예 흡수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2-2. BCS(Biopharmaceutics Classification System)에서의 분류

분류                                  용해도             투과성             예시 약물
Class I 높음 높음 Metoprolol
Class II 낮음 높음 Ibuprofen, Ketoconazole
Class III 높음 낮음 Cimetidine
Class IV 낮음 낮음 Paclitaxel, Amphotericin B

BCS Class II 또는 IV에 속하는 약물은 난용성의 대표적인 예로, 이를 경구 제형으로 개발할 때는 나노기술과 같은 특수 제형 기술이 필요합니다.


3. 나노기술 기반 약물 전달 시스템의 원리

나노 약물 전달 기술은 단순히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달 경로를 최적화하고, 약물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조절하여, 체내 흡수율을 비약적으로 개선하는 다단계 기술입니다.
그 주요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입자 크기 감소 → 표면적 증가 → 용해도 향상
  • 장 점막 및 세포막 투과성 개선
  • 약물 안정성 증가 → 분해 억제
  • 표적 조직으로의 선택적 전달 가능
  • 지속 방출 또는 시간 조절 약물 방출 시스템 구현

4. 주요 나노 제형 플랫폼과 특징

플랫폼                                                 특징 및 작용 원리                                                       적용 사례

 

나노결정(Nanocrystals) 순수 약물 결정 구조를 100~500nm 크기로 축소 Fenofibrate, Aprepitant
리포좀(Liposomes) 지질 이중막 구조체, 약물 캡슐화 및 세포막 융합 용이 Amphotericin B (Ambisome®)
SLNs / NLCs 고체 지질 기반 나노입자 / 액체지질 혼합체 Paclitaxel, Docetaxel
나노에멀전(Nanoemulsions) 유상 또는 수상 미세 유화 시스템, 높은 용해도 확보 Cyclosporin A (Neoral®)
고분자 나노입자(Polymeric NPs) PLGA, PCL 등 생분해성 고분자로 구성 Insulin, Doxorubicin

5. 실제 적용 사례

Amphotericin B - Ambisome®

기존에는 독성이 강한 주사제로만 투여되던 항진균제였지만, 리포좀 제형을 통해 난용성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 친화력도 크게 개선.

Paclitaxel - Abraxane®

항암제 Paclitaxel은 난용성 약물로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나노기술 기반의 알부민 결합 나노입자로 안정성과 생체이용률을 향상시킴.

Curcumin (강황 추출물)

생리활성이 높지만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커큐민도 고분자 나노입자, SLN, 마이셀(micelle) 형태로 흡수율 개선 연구 활발.


6. 국내 제약사의 기술 동향

대한민국 제약업계에서도 나노기술을 기반으로 한 약물 전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 한미약품: 스마트 나노입자 플랫폼(SMART NP) 기술을 기반으로 항암제 및 펩타이드 약물의 생체이용률 개선을 추진 중
  • 셀트리온: 나노입자 기반의 고형 제형 항암제 후보물질을 비임상 단계에서 검증
  • 유한양행: 경구형 약물전달 플랫폼 ‘Nano-DDS’ 기술 도입 및 미국 바이오텍과 공동 개발
  • 대웅제약: 나노에멀전 및 SLN 기술을 이용한 난용성 약물 경구제형화 연구 수행

7. 과제 및 전망

◾ 기술적 과제

  • 물리적 안정성: 나노입자는 시간이 지나면 응집하거나 침전될 수 있음
  • 대량생산의 어려움: 실험실 스케일에서 공정 최적화가 어렵고, GMP 생산 전환에 시간 소요
  • 규제 불확실성: FDA와 EMA 등은 나노 기반 제제에 대해 별도의 독성평가, 분석법, 승인 요건을 요구

◾ 향후 전략

  • 표준화된 생산 공정 개발: 안정성과 재현성을 확보하는 제조공정이 필요
  • 장기 안정성 확보 연구: 저장 조건, 캡슐화 기술의 정밀화
  • 복합제형화: 나노기술과 스마트 약물 방출 기술의 융합

결론: 난용성의 벽을 허무는 나노 기술

제약산업의 혁신은 더 이상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데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좋은 약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곧 혁신의 핵심입니다.
나노기술은 바로 이 ‘전달의 과학’을 가능하게 합니다. 물에 잘 녹지 않아 활용도가 낮았던 수많은 약물들이, 나노기술을 통해 더 작고 더 강력하게, 그리고 보다 효과적으로 환자에게 전달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향후 정밀의료, RNA 기반 치료제, 표적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노 약물 전달 시스템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제약사와 연구소 모두 이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 기술 내재화와 전략적 투자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점입니다.